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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지의 밥상 - 오필선

오필선 수필가 | 기사입력 2020/05/26 [18:55]

<수필> 아버지의 밥상 - 오필선

오필선 수필가 | 입력 : 2020/05/26 [18:55]

 

▲ 오필선 시인/수필가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한국산문」 수필 등단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한국산문 회원
대한문인협회 정회원
대한문인협회 경기지부 홍보차장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신작로를 따라 차고지로 간다.
아들 하나에 딸 넷인 집이라 아침 식사에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심부름은 늘 아들 몫이었다.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는 버스 차고지 쪽방에서 밤새 노름한 아버지를 모셔오는 일이다. 아들은 알고 있었다.


골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투전으로 밤을 보낸 아버지를 불러봐야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꾀가 말간 아들이지만 어머니의 분부를 거역할 수 없었다. 터덜거리며 노름방 문 앞에 선다.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늘 부르던 대로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엄마가 밥 먹으래요!”


아무런 기척이 없다. 문을 두드리며 다시 소리 높여 부른다.


“아버지 엄마가 밥 먹으래요!”


쪽문이 열리고 고개를 내미는 우물집 상길네 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야! 이놈아,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해야지, “아버지 밥 먹으래요, 가 뭐야.”


아들은 재빠르게 다시 말한다.


“아버지 진지 잡수세요!”


구석에서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아버지 음성이 들린다.


“알았다. 먼저 가라.”


딱 한마디에 문이 쾅 닫힌다. 뒤돌아선 아들은 되새김질처럼 구시렁거리며 왔던 길로 발길을 돌린다.
  어머니는 조막만한 아들이 혼자 올 거라고 이미 알고 계셨다.
괜한 심부름을 시켜 아들 다리품만 팔게 했다는 사실도.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들을 어머니는 애써 눈길도 주지 않으며 외면한다.


“아버지 안 오신데, 그냥 가라고 해서 혼자 왔어.”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반응도 하지 않는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하얀 쌀밥만 걷어 꾹꾹 눌러 뚜껑을 덮고는, 뒤주 위 솜이불 사이로 밥그릇을 쑥 밀어 넣었다.


언제라도 집에 오실 아버지 밥이 조금이라도 온기가 남아 있으라는 배려였다.
그것이 아니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을 뼛속까지 몸으로 익힌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없이 둘러앉은 다섯 남매의 아침 밥상은 초라하다. 하지만 찍어 먹을 찬도 없는 밥상에서도 두런두런 소란스러움이 배어나고 재잘재잘 씹는 소리는 고소했다.
노름판에 끼어들 밑천이 없는 날에는 아버지가 밥상을 같이했다.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식사할 때는, 매번 밥상은 하늘을 날고 여지없이 찬들은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머니의 입에서 악다구니라도 새어 나오면 밥상은 그 자리에서 태질을 당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어머니의 악다구니는 쏟아졌다.


옷으로 칠한 나무 밥상은 못질을 수없이 받아내고도 견디지 못해 불쏘시개로 변한 지 옛날이다.
싸구려 양은 밥상으로 교체했지만 이마저도 우거지상을 면하지는 못했다.


 어느새 어린 아들은 결혼하고, 아들의 두 아들이 장성하여 대학에 다닌다. 아들들은 등하굣길이 멀어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한다. 덕분에 나는 신혼도 아니면서 신혼인 척 산다.
아내에게 전화했다.


“복날이라 삼계탕 한 그릇 가져가니 저녁 준비하지 마세요.”


전화기 너머로 빙긋이 웃는 아내의 모습이 선하다. 삼계탕도 춤을 추듯 미끄럼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자 막내아들 신발이 보인다.


“어이쿠! 아들이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할 것이지! 한 그릇을 더 사 왔을 텐데.”


예상은 늘 비껴가지 않고 얄밉게 적중한다. 냄비에 데운 삼계탕을 큰 그릇에 담아 아들을 부르며 먼저 먹으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날개부터 국물까지 싹싹 비우며 입맛을 다시고는 상을 무른다. 난감한 이 상황에 내 입은 오리 주둥이로 변해 식탁 위로 구르고, 아내는 멋쩍은 표정으로 내 눈길을 애써 외면한다.
쌀밥만 골라 고봉으로 아버지 밥그릇에 먼저 밥을 담으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내의 행동에 울화가 치밀며 결국 맘에도 없이 불끈했다.


“당신은 아들만 눈에 보이지?”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요즘 다 그래, 공부한다고 힘든 아들을 잘 먹여야지, 모처럼 집에 왔는데 그걸 가지고 시비야.”


이런 날엔 “그리운 어머니”란 제목으로 써 놓았던 시가 떠오른다.
“어제 먹은 보리개떡이 얹혔나/하루 내 가슴만 저리다./그리움 한입 베어 물고/보고픔을 가득 채워도/가슴으로 토하는 서글픔만/두 눈 타고 흐르네./가끔은 그리움도 되고/때로는 보고픔도 보이더니/어머니 그리움에/이리도 가슴만 저렸나 보다.”


다음날 퇴근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꽤 유명한 식당에 예약했다며 밖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먹지도 않은 보리개떡이 얹혔는지 하루 내 답답했던 속이 풀어졌다. 아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삼계탕 식당 지붕위로 어머니를 닮은 환한 아내의 예쁜 미소가 보름달처럼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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