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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상처傷處와 상흔傷痕 - 강미애

강미애 수필가 | 기사입력 2020/06/02 [18:02]

<수필> 상처傷處와 상흔傷痕 - 강미애

강미애 수필가 | 입력 : 2020/06/02 [18:02]

 

▲ 강미애 수필가  
 교육학 석사
2001년 월간 <수필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부회장
국제펜클럽 회원
저서, 산문집 『이미지기록 蒼』 외 다수
공저 『새들도 누군가의 담을 넘는다』 외 다수

 자기가 쓰고 있는 소설 속의 여 주인공이 죽게 된 날 밤에, 비 오는 런던 거리를 밤새도록 울며 서성거렸다는 어느 작가의 독백을 읽을 적이 있다.


작품 속에 그녀는 작가의 마음의 마음이요, 철저히 그의 분신이며 사상과 감정의 피를 나눈 또 다른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건 바로 그 자신의 죽음을 뜻한다.

아마도 그는 〈내가 죽었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수없이 외쳤을 것만 같다. 사람은 죽는다.


단 한 번의 죽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다섯 번도 열 번도 죽는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나의 최선의 것이 무너져 내릴 때마다 나도 함께 죽었다.

〈최선의 것이 죽었어. 때문에 나도 죽은 거야.〉
이 암담한 언어.
우리는 수시로 죽음에 직면한다.
직면할 뿐 아니라 수시로 죽는다.


 사람에겐 그 나름대로 최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남에게 견주어 볼 땐 실로 보잘 것 없다 해도 그에겐 하늘같은 절대이다.


그러나 이를 들어 올릴 완력腕力이 달리면 아차 하는 사이에 손을 놓아 버린다.
삶이 으깨져 흩어지는 그 허무한 조각들. 죽음이 지나가면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다.
지금 자신의 몸에 흉터가 있는지 없는지 들여다보라. 최소한 한두 개 정도의 상처자국인 흉터들이 있을 것이다.


흉터는 상처의 흔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지만 흉터는 우리의 몸에 상흔傷痕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상처 받고, 흉터를 남기는가. 대부분 누구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상처를 자처自處하고 흉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자기를 알아달라는 것이다. 내게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상처를 받는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많은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상처는 치유 받아야 한다. 치유 받지 않은 상처의 흉터는, 그것을 보고 생각할 때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불신과 원망의 벽을 높이 쌓기 때문이다.
아픔을 이해하자. 섭섭함을 어루만지고 벼랑 끝에 섰을 땐 누구든 옆에 함께 있어 주자. 하지만 묘하다.
대부분의 상처는 오히려 드러나지 않으며, 때문에 아무런 위로도 구하지 않는다.
잠결에도 놀라게 되고 꿈속에서도 눈물짓게 하는 설움이다.
천천히 저음으로 내뱉게 되는 말들.

 

〈나의 최선의 것이 죽었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것들이〉
죽은 여자를 물 밑에 가라앉히는 의식이 눈앞을 스친다. 죽은 여자는 나다.
혹은 소설 속의 그녀다. 자기가 쓴 작품 속의 여 주인공이 죽은 날 밤에 비 오는 런던 거리를 울며 헤매었다는 그 소설가는 이로써 실재의 인물임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내부의 것이 눈 감음으로 하여 나도 죽는다. 내 심장이 멈춤으로 하여 내가 죽는다. 사랑이 내 안에서 끝났을 때 나는 죽는다.

 

손을 베였다 /책을 잘못 건드렸다 / 종이 한 장이 날을 세우고 있다가 / 내 영혼을 스윽 베어 버렸다 / 모가지가 뜨끔했다 / 종이에 묻은 핏방울이 지워지지 않았고 / 글자 몇 개가 붉게 물들었다 / 내 몸이 다녀간 흔적을 책의 영혼은 가지고 있다 / 내 영혼이 책을 만나기 이전에 / 내 몸이 먼저 책을 만났다 / 그 책 속에 매복해 있던 글자들이 / 칼을 들고 내 눈동자를 노려보고 있을 때, / 종이 한 장이, 기껏해야 종이 한 장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 상처, 강 수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적인 트라우마나 치부는 숨겨야만 하는 존재다. 그러나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더 큰 흉터가 돼 삶을 힘들게 한다.


결코 끝이라고 말하지 말자.
우리의 최선인 것이 죽었다 해도 우리 자신까지 죽었다고 여기지 말자.
하나의 최선이 죽거든 그 다음 최선을 또 만들어 내자. 모든 걸 포기했을 때라도 진실의 밑뿌리는 시들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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