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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카페라테처럼 - 조영자 수필가

조영자 | 기사입력 2020/08/18 [20:02]

<수필> 카페라테처럼 - 조영자 수필가

조영자 | 입력 : 2020/08/18 [20:02]

 

▲ 조영자 수필가
月刊 「수필문학」으로
등단(2019)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원
現, 문학동인 글풀 회장 

 

 

  하루의 피곤함이 배어 있는 운동화에 이끌려 기계적으로 길을 걷는다. 횡단보도에 멈추어 신호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재빠르게 지나간다. 늦은 밤이니 굳이 신호를 지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융통성은 나이가 들어도 늘지 않는다.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매번 미련스럽게 손해를 보지만 괘념치 않는다. 약삭빠르지 못하다고 잔소리하던 엄마의 얼굴이 스쳐간다. 다행히 막차는 아니다. 다음 버스는 24분 뒤에 도착한다고 전광판이 깜박인다.

 

 황량한 버스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걷는 것이 어떨까. 전철역까지는 세 정류장이라서 멀지 않고 전철시간도 넉넉하다. 무엇보다도 바람사이로 묻어나는 아카시아 향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밤길을 걸으며 내내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아주 오래 전의 역전다방처럼 전철역 어디에나 카페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커피 향에 이끌려 역전 카페에 들어선다. 메뉴판의 가격을 보니 아르바이트 시급의 반을 훌쩍 넘는 가격이다. 갈등도 잠시, 호사를 누려보자며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순간, 나름의 일탈이라 여기며 우유를 반으로 줄이고 샷 추가로 주문을 바꾸었다. 쓸데없이 아르바이트 직원의 눈치를 살핀다. 손님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사용하는데 왜 미안함이 불쑥 들어오는지 나의 나약함이 싫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커피콩이 내 하루의 고단함을 받아 부서진다.

 

 진한 커피 향이 코끝을 건드린다. 갈색 거품 위에 새하얀 하트 모양이 선명하다. 호사에 걸맞는다. 라테의 품위는 풍성한 거품이 증명한다. 짐짓 예의를 갖추고 한 모금 공손하게 받아들인다. 진한 커피의 맛이 입안에 퍼진다. 이런, 쓰다. 많이 쓰다. 하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그 쓰디쓴 맛이 달콤함으로 바뀐다. 내 미각을 의심하며 급하게 다시 넘겨본다. 쓰지만 달다. 우유의 고소함이 곁들여져 커피의 풍미를 감싼다. 마지막 한 방울을 털어 넣을 때까지 쓰다가 달다가를 반복한다.

 

  한시적으로 식당 아르바이트를 다닌 적이 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가능한 설거지 업무였다. 하지만 혈기도 체력도 부족한 내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극심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시간당 최저임금은 진한 커피처럼 쓰게만 느껴진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설령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 해도 대부분은 만족하지 않는다.

 

 다만, 인생의 어디쯤에서 만나게 될 달콤함을 기다리며 지금의 고된 여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좀 더 욕심을 내어 우유처럼 고소함이 불쑥 찾아온다면 인생의 쓴맛도 견뎌 볼만 하지 않을런지. 오늘도 카페라테처럼 마지막은 달콤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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