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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례/수필가> 케렌시아

안산신문 | 기사입력 2021/04/16 [22:59]

<장석례/수필가> 케렌시아

안산신문 | 입력 : 2021/04/16 [22:59]

 

  ▲ 장석례/수필가
2016년 7월 <한국수필>로 등단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사)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상담학박사(Ph. D.), 교육학석사(상담심리), 문학석사(국문학)
심리상담사, 문학심리상담전문가, 독서심리상담전문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는 부침개가 생각난다. 텃밭에서 갓 수확한 채소류를 송송 썰어 넣고 반죽을 하면, 호박의 부드러운 감촉과 혀끝을 톡 쏘는 풋고추의 매콤함과 녹음을 우려낸 깻잎과 부추향이 버무려져 일품의 맛을 낸다. 달궈진 솥뚜껑에 기름을 두른 다음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떠서 얹으니, 빠작빠작 부침개 익는 소리와 빗소리의 추임새가 어우러져 감흥을 돋운다. 빗줄기 사이로 퍼지는 고소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할라치면 부침개를 쭈~욱 찢어 입에 넣는다. 한 입 두 입 먹다보면 한 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배는 맹꽁이배처럼 부풀어 오른다. 대청마루에 대자로 누워있자니, 미꾸라지가 팔딱이듯 튕겨 오르는 빗방울 소리가 자장가로 들린다.

 

요즘은 예전의 부침개를 부치던 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석유곤로에 솥뚜껑을 얹어 부침개를 부치던 봉당은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으로 옮겨지고, 온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앉은뱅이 둥근 밥상은 세련된 식탁으로 바뀌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침개를 먹던 대청마루는 큼지막한 TV와 소파가 차지하고, 농사이야기와 이웃소식을 전하던 어른들의 화제는 복잡다난한 일상과 자녀 이야기로 채워졌다. 특히 달라진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재료는 같은데 옛 맛이 나지 않고, 어른들의 투박한 어투에서 나오던 구수한 울림과 설렘을 느낄 수 가 없다.

 

코로나19는 일상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코로나는 사람들의 관계 맺기를 강제로 차단하고, 마음을 나눌 소통의 물꼬마저 막아버렸다. 느닷없는 거리두기로 마음은 동굴 안에 갇힌 것처럼 어둡고 갑갑해졌다. 전 세계의 사망자가 70만 명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사방이 막힌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공포가 밀려왔다. 강제적인 관계 차단은 코로나블루라는 이유 없는 우울증까지 안겨주었다. 사람들 만나기가 조심스러운 요즘, 부침개에 대한 그리움이 더 일렁이는 것은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서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타인을 향해 촉을 세울 때는 보이지 않던 자신의 마음에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심리상담사 수련과정에서 나름 마음 보살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묻는 마음의 소리에 주저주저하게 된다. 마음과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무엇을 할지 몰라 당황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브레이크 없는 욕망과 욕심 때문에 많은 시간 낭비했음을 깨달았고, 느림의 여유와 편안함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한국학습상담학회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학교 현장 학습과 상담’이란 주제로 학회가 열렸다. 모국회의원의 축사가 특별히 마음에 담겼는데, 언론인 출신의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변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영화에서 본 가상현실이 현실화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는 인간중심사회로 가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중세 때 흑사병이 창궐한 이후에 인간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코로나 이후에 인간중심사회로 회귀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방송을 보면 가수들은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집에서 화상을 통해 화답하고 있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활보하고, 모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열화상카메라 앞에 거리를 두고 서있다. 이러한 장면은 가상현실의 도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럼에도 르네상스에 동조하는 것은, 그의 말

 

을 들으면서 어두운 생각에 작은 숨구멍이 뚫리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축사의 마무리에서 그는 ‘상담사들이 케렌시아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케렌시아는 소가 투우장에 들어가기 전에 휴식을 취했던 장소이다. 소가 마지막 순간 그곳에서 복잡한 마음을 정리했던 것처럼, 사람들도 절박한 순간에 자신을 붙잡아 줄 카렌시아가 필

 

요하다고 본다. 카레시아는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 안정적인 공간일 수 있고, 마음의 위로를 원하는 이에게는 상담사일 수 있으며, 마음의 온기가 부족한 누군가에게는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부침개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상형문자인 한자에서 사람(人)이 서로 기대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가족 간 대화가 적어지고, 인터넷 세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사람들의 관계를 강제로 차단시켜버렸다. 코로나는 사람들의 몸은 차압했지만,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깨달은 관계 맺기의 소중함을 지키고, 관계 회복을 위한 플랜을 짜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장대비가 퍼붓는 오후, 빗소리를 들으면서 부침개를 부쳤다. 나이든 형제자매들은 모이기가 조심스럽고, 부침개를 좋아하는 조카는 가까이 살지만 외국출장에서 돌아와 자가 격리 중이라 부를 수가 없다. 홀로 먹으려니 마음 빈 공간에서 부는 찬바람을 부침개의 온기만으로 데울 수 없다. 부침개를 몇 장 더 부쳐서 조카네 현관 앞에 놓고 돌아서는데, 부침개를 받쳐 든 손의 따스한 아지랑이가 마음을 타고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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