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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섭 컬럼> 나는 월남 귀순용사다

목숨 걸고 사선 넘다 북한이야기④

안산신문 | 기사입력 2021/04/16 [23:26]

<김관섭 컬럼> 나는 월남 귀순용사다

목숨 걸고 사선 넘다 북한이야기④

안산신문 | 입력 : 2021/04/16 [23:26]

 

 

  ▲ 김관섭
월남 귀순용사

 

월남 귀순용사 김관섭(86)옹께서 5년 전인 2016년 ‘나는 월남 귀순용사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했다. 그 자서전의 내용을 ‘안산신문’에 연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1969년경 해안으로 침투하던 북파공작원 1명을 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이렇게 당과 수령에게 충성을 다 했는데도 『당책벌을 받은 자』라고 하여 북파공작원체포에 대한 공로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중대장 생활은 이러한 상실감과 정신적 갈등 속에서 이어졌다. “이러한 생활을 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로 늘 고민했다. 이렇게 어두운 생활이 계속되고 있는 나에게 청천병력과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인민군대에 입대하기 전 결혼하여 7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아내와 자식을 잃은 것이다.

 

임신한 처가 배 속의 태아가 잘못되어 개성 시립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약 2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던 중 간호미숙으로 사망했다. 처도 죽고 배속에 있던 태아도 죽었다. 이 비보를 듣고 나는 시립병원 영안실에 가서 얼음장 같은 시체를 부둥켜안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서 통곡하고 몸부림쳤다. 한 순간도 그 때를 잊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복무하던 중대에서는 전기 감전사고와 잠복초소 근무중에 오발사고가 발생했다. 2명의 무고한 군인이 사망하는 인사사고인 것이다.

 

당시 상급부대인 개성시 경비처에서 적정 통보를 받고 증강한 잠복초소에서 초병을 북파공작원으로 오인하고 발사하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느다란 목소리로 ‘중대장 동지’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한 병사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던 나의 처절한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중대장 임무에 최선을 다했지만 계속되는 인사사고로 최전방지역에서 후방부대인 철도경비대 신북청 중대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고선 아내와 병사의 무덤을 뒤로하고 한 많은 개성지구를 떠날 때 나는 냉혹하고 비정한 당 간부들의 비인간성에 대해 분노했고 배신감과 증오심 그리고 일종의 복수심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 북한이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고 소작농 하던 사람들을 동원, 지주와 그 가족들을 감금 폭행하고 고발하여 잔인하게 처단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만행과 비인간성을 직접 목격하고 공산주의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개인재산을 강제 몰수하여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부정하고 인간 노예생활을 강요하는 공산집단을 위해 충성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이, 마지못해 인민경비대 중대장 생활을 해왔다. 새로 배치된 철도 경비대 중대장 생활도 계속되는 당 정책학습과 중대 정치지도원, 국가보위부 지도원들의 감시와 당 생활총화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 때 당과 수령에게 충성을 다하고서도 이 체제에서는 인간다운 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북한의 인권을 유린하는 비인간성과 전쟁준비 실상을 남한에 알려 한반도에서 전쟁만은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남한으로 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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