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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수필가> 새치염색

김경숙 | 기사입력 2021/04/29 [00:04]

<김경숙/수필가> 새치염색

김경숙 | 입력 : 2021/04/29 [00:04]

 

 

 ▲ 김경숙/수필가
2018년 문학이후 겨울호 수필 등단
성포문학회 회원

 

첫 손님이겠거니 싶었다. 희끗희끗한 거울이 싫어 눈 내리는 아침도 마다않고 나선 걸음이다. 살며시 미용실 문을 열었다. 이미 반쯤 염색을 끝낸, 나보다도 빨리 온 낯익은 얼굴 하나. 순간 둔탁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서늘한 느낌이라니. 주인장의 반가운 인사도 아랑곳없이 그 짧은 틈새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입까지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믹스커피 하나를 종이컵에 붓고 읽지도 않을 잡지 한 권을 서성대듯 꺼냈다. 그것을 펼쳐 듬성듬성 거울 커튼을 달았다. 그래도 비스듬한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

 

책 사이로 거울 속에서 내뱉은 단어들이 슬근슬근 날아들어 활자처럼 꾹꾹 찍힌다. ‘제가요 젊었을 땐 머릿결이 찰랑찰랑해 헤어모델 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나이 드니 숱은 줄고 새치만 늘어나네요.’ 거울 속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어진 커트머리 주인장의 지적이 날카롭다. ‘그때는 젊었을 때가 아니고 어렸을 때라고 하는 거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거울 속 젊은 그녀. 그녀는 여덟 살 여섯 살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그 사건만 없었다면 눈인사 정도는 하고 지냈을, 바로 내 윗집 여자다. 아파트 위아래 층이라 자주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찬바람 쌩쌩 불 듯 휑하니 지나갈 뿐 오늘처럼 한적한 공간에 한 시간 여 함께 있어보긴 처음이다.

 

이제 그녀 대신 내가 카키색 가운을 입고 거울 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대학시절부터 시작한 새치염색 아니 몇 년 전부턴 새치라고 부를 수도 없는, 완연한 흰머리 염색이 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귀찮고 지루하긴 매 마찬가지다. 그래도 머리숱 많아 다행이라는 주인장 이야기에 그녀가 거울 속을 힐끔 쳐다본다. 나처럼 그녀도 거울에서 튀어나온 말이 의도치 않게 날아드는 모양이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1년 전 겨울이다. 대학을 다니는 아들 녀석이 주말이면 피아노를 치곤했는데 그 소리 때문에 윗집에서 초인종을 누른 것이다. ‘205호 사는 사람인데요, 피아노를 치려면 방음장치부터 하세요. 아이가 낮잠을 잘 수 없어요.’ 아파트라는 성냥갑 같은 공간에 갇혀 내 식구끼리만 살다보니 차 한 잔은커녕 인사 한번 나눈 적 없던 그녀였다.

 

현관문을 열고 잠시 들어오라고 해도 문 틈새로 할 말만 겨울바람처럼 반복하듯 밀어 넣는 그녀. 순간 내 입도 근질근질, 댁의 아이들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소리는 고사하고 툭하면 터지는 당신들 부부싸움 때문에 나도 애써 꾹꾹 참고 있는데 미안해도 한참 모자랄 윗집에서 무슨 소리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피아노 치는 시간을 피해보겠다며 돌려보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며칠 뒤 또 내려왔다. 이번엔 피아노 조율이 문제였다. 우리 집이 아닌데도 혹시나 싶었던 모양이다. 현관문을 여니 그때는 확인이라도 하려는지 얼굴을 삐죽이 내밀곤 집 안을 이리저리 살피는 기색이다. 자기 할 말만 또박또박, 구석구석 염탐하는 이기적인 눈빛에 내 근질거리던 입을 다시 한 번 단속하려던 찰나, 거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아들 녀석이 나서고 말았다.

 

일이 커졌다. 녀석이 그녀에게 방음장치 운운하기 전에 당신은 아랫집에 피해 끼친 적 없냐며 조목조목 따지고 나선 것이다. 우리도 애써 참고 있으니 당신들도 조심해달라는 녀석 말에 그녀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아이들이 어려서 뛰는 것은 어쩔 도리 없으니 못 참으면 주택으로 이사 가라는 것이다. 그 바람에 한참동안 아들 녀석을 혼내고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한바탕 접전 뒤 그 전까진 그러려니 생각하고 말았던, 윗집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란스런 움직임에 대해 자꾸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흉흉한 사람이 사는 것보단 그래도 어린 아이들이 뛰노는 집이니 다행으로 여기자고 해도 이기적인 그녀에 대한 짜증스러움이 줄곧 가시지 않아 당신들도 방음장치 하라는 말을 해볼까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한동안 소음이 들리지 않은 적이 있었다. 잘 때까지 매번 천장에 쿵쾅거리는 소음을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사는 느낌이었는데 한동안 조용하다 못해 갑자기 온 집이 심심해져버린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잠시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부피도 없는 그저 빈 공간이 되어버린 천장을 보며 무슨 오지랖인지 은근히 마음까지 쓰였다.

 

염색 후 한결 밝아진 목소리가 뻣뻣한 거울을 뚫고 몇 마디 흘러나온다. 입고 온 외투를 다시 걸친 그녀가 문을 열고 눈길을 서너 발자국 걸어갈 때 쯤 ‘나이도 젊은 엄마가 참 안쓰러워요. 얼마 전 이혼을 했다는데 사내 아이 둘을 혼자서 어떻게 키우려고.’ 뜻밖이었다.

 

소설가 오정희의 단편 <소음공해>를 보면 소설 속 주인공이 윗집 층간소음 때문에 항의하러 갔다가 오히려 그 소리가 휠체어 끄는 소리라 미안하고 당황스러웠다는 내용이 나온다. 내가 꼭 그런 느낌이었다. 그녀를 향한 미용실 원장의 염려 섞인 말들은 윗집 소음에 괸 오랜 짜증들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일종의 부스럭거림과도 같았다.

 

다시 거울 속이다. 언제 희끗했나 싶게 한 올 한 올 잘 스며든 듯하다. 자연스럽게 물든 거울 안을 보니 사람 마음도 뾰족 솟은 새치가 한둘 쯤 생길 때 바로 물들이면 되돌릴 수 있는 염색약이 있다면 어떨까 싶다. 미리 미리 층간에 떠 있는 냉기를 따뜻이 풀어냈다면 서로 모난 시선은 주고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이기적인 것은 그녀만이 아닌, 각박함에 물들어버린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흰머리가 늘어날수록 꽃이 시들어도 그러려니, 윗집에서 쿵쾅 소리가 나도 그러려니, 누군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그러려니. 그저 그러려니 읊조리며 사는 게 중요하더라.’라는. 염색할 흰머리가 많아진다는 것, 그만큼 모난 감정도 재빨리 물들이며 부드럽게 넘기라는 말은 아닌가 싶다.

 

눈이 연한 바람 불 듯 약해졌다. 희끗한 머리도 가라앉았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구근 뭉치처럼 쌓인, 설익은 내 속의 다툼도 하얀 눈 위에 자디잘게 부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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