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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 컬럼> 소상공인 바라보기

김희삼 | 기사입력 2021/07/07 [19:01]

<김희삼 컬럼> 소상공인 바라보기

김희삼 | 입력 : 2021/07/07 [19:01]

 

 

  ▲ 김  희  삼 (안산시민)

 

신입사원 입사 시험에 합격하여 경기도 청평 산장호텔에서 입직교육을 받던 때의 이야기다. 낙목한천 바람 몰아치는 정월 초순 어느날 새벽 교육과장이 자는 신입사원들을 갑자기 깨우더니 폴라로이드 카메라 두 대씩을 주면서 서울 나가 팔아오라는 것이었다. 밥도 안 주고 마장동 터미널 나갈 버스비로 지전 1천원만 쥐어줬다. 집에 가서 팔면 안 된다, 친구나 지인에게 팔아도 안된다, 청량리 좌판이나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팔아라, 빌딩 사무실에 불쑥 방문하여 애걸복걸하여 팔아라, 저자거리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외치면서 팔아라 등등이 그 ‘극기훈련'의 판매 수칙이었다. 당시는 시외 터미널에 가면 버스에 올라와서 즉석 복권표를 주면서 건강식품을 팔거나 가가호호 방문을 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파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던 시절이다. 지금 지하철에서 장난감 자동차 팔고 기가 막히게 저렴한 겨울 목도리를 파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특판시스템은 쌍팔년도 ’버스터미널 건강식품‘이 원조다. 과장은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실적 달성 후 금의환향하라. 한대도 못판 놈은 재분류해서 지방 공장으로 배치한다.“

 

‘불모지에서 불특정 고객에게 정면 도전해서 판매하라’로 요약되는 이 훈련 방식은, 생면부지의 땅에 가서 시장을 개척하고 상품에 관심을 끌게 해서 마침내는 호주머니의 돈을 꺼내게 하는 판매 방식을 직접 체험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담력을 키우고 험난한 일을 경험하여 장차 유능한 직장인으로 성장하고 회사에 기여토록 하라 이것이 그 훈련의 교육 목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리 생각한다.

 

개발도상국다운 (대우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런 교육은 적어도 7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까지 사기업, 공기업 할 것 없이 유행처럼 번졌고 과연 교육은 효과가 있어서 이런 교육을 받은 신입사원들은 회사 신장에 크게 기여했으며 마침내 대한민국 경제가 두 자리 숫자로 성장하는데 막대한 기여를 한 산업역군이 되었다. 우리의 선배들이 태양이 멀쩡하게 이글거리는 아프리카에서 털 담요를 팔고, 얼음 지붕 밑에서 사는 에스키모에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냉장고를 현찰로 팔아치울 수 있었던 괴력은 탁월한 제조 품질 플러스 이런 ‘폴라로이드 류’ 교육훈련에서 나왔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괴력이 쌓이고 쌓여 소득 3만불을 넘기고 마침내 2021년 7월 2일 UNCTAD로부터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다’라는 낭보를 듣게 되었을 것이다.

 

말이 엉뚱한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위로 올라가서 아무튼 서울 와서 카메라를 한 대도 팔지 못할 지경에 처하자 ‘지방 배치’에 겁을 먹은 나는 용기를 내서 자양동 혜민병원 인근에서 신라양복점을 운영하던 친구를 찾아갔다. 짜장면 먹으며 노닥거리다가 갖은 감언이설로 종이곽처럼 조잡하게 생긴 즉석 카메라 한 대를 겨우 팔 수 있었는데 유일한 매출 실적이었다(친구는 돈만 주고 카메라는 받지 않았다). 지인에게 팔지 말라는 판매 수칙을 정면으로 어기고 거금 1만원의 판매 대금을 수령하여 태연하게 청평으로 무사 귀환한 나는 그 덕분인지 지방 공장으로 배치되지는 않았고 대신 서초동 사이다공장 현장으로 보임받아 생애 첫 공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지방 배치를 면해 기쁜 나머지 시커먼 얼굴을 하고 동기생들과 화장실 가서 굳센 오줌 줄기를 한번 쳐다보고 턱 빠지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판매자이기보다는 주로 구매자의 입장이 되어 있다. 식당에도 가고 서점에도 들르고 횟집이나 삼겹살집도 들르고 백화점도 찾고 편의점에도 가고 10시에 문 닫는 노래방도 간다. 그런 곳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일상이다. 바로 자영업자이고 소상공인이다. 그들이 지금 코로나19로 힘들어 하고있다. 신입사원 시절 폴라로이드 카메라 영업을 해보고, 연구 원가 생산 유통 판매를 기획해보고, 그 후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본, 즉 갑을병을 교차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코로나 확진자 700명이 넘는 2021년 초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고단한 하루를 바라보는 마음 편하지가 않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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