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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삼컬럼- 모친 생각(2)

김희삼 | 기사입력 2022/01/13 [11:23]

김희삼컬럼- 모친 생각(2)

김희삼 | 입력 : 2022/01/13 [11:23]

 

 

▲ 김희삼 (미래창조경영연구원장)     

 

  어머니가 경주 최씨 부잣집에서 삼단같은 머릿결에 동백기름 바르고 가마 타고 시집와서 한틀 마을 김생원집 며느리가 된 것은 고운 나이 열여덟, 요즘으로 치면 고2다. 그 김씨네 집은 종가집이고 대가족이어서 절기 맞춰 농사짓는 일에서부터 날짜 맞춰 시제(時祭), 기제(忌祭) 지내는 일은 물론이고 시도련님 시누이 시집 장가보내고 6촌,8촌 집안 내 모든 대소사까지 챙겨야 했는데 대갓집 며느리로 들어온 여인이 수행해야했던 고추당초 같은 시집살이였다. 조선의 유교관념의 잔재가 생명력 있게 남아있던 대한민국 여명기를 살아온 이 땅의 ‘큰집’ 며느리들이 떠안아야 했던 숙명이며 팔자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며느리 생활로 70년을 보냈다. 그 세월 전반기 3할은 지아비를 의지하면서, 남편 여읜 후 7할 50년은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온 신산한 세월이었다. 여기에다 시집오기 전의 열여덟 해는 분명 친정 부친님 지시를 따랐을 것이므로 그녀의 일생을 구획하면 어려서는 아버지, 출가해서는 지아비, 늙어서는 자식 뜻을 좇아 살았을 것이니 이것이 한국 여인이 가야했던 길 삼종지도의 길이다.

 

  그런 세상을 살고나서 주위를 보니 삼단같은 머리결은 파뿌리가 되었고 아홉 남매 시형제들도 하나 둘씩 저 세상으로 떠났다. 이제 마지막 남은 시형제는 두 분, 당신이 시집와서 업어 키웠다는 시누이는 늙어 구루마 몰고 있으며 서울 신당동에서 아파트 경비일 하는 시아제 한 분도 외롭고 외로우니 지아비 없는 어머니의 주위가 갈수록 허전하리라.

 

  어머니의 시어른이자 조부님은 고루한 시골 유지였다. 내 나이 열 살도 안되던 때 조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느그 조상님으로 말할 것같으면…”, 이리 시작하는 일장 훈시 말씀은 사방이 탁 트인 대청마루에 무릎 꿇고 들어야 했다. “조선 후기 한양에서 살던 선비 한 분이 풍선(風船) 배를 타고 제물포를 나서서 서해바다를 거쳐 전라도 영광까지 왔더란다. 거기서 수년을 살다가 식솔을 이끌고 재원도라는 섬에 들아왔는디…” 그분이 우리들 8대조 되는 어른이라는 이야기. 나는 그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안들어도 다 안다.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엷게 졸고 있는 사이 조부님의 조상열전은 예상대로 7대 6대 5대 4대로 쭈욱 내려와 당신이 살던 일제를 거쳐 한국 전쟁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졸던 눈을 뜨면 조부님 훈시도 대강 끝난다. 그러면서 “그리하야 참 훌륭한 어르신들이었다”로 엔딩하는 이것이 조부님이 들려주던 ‘김씨 가문 남하 정착기’이다.

 

  나는 이런 ‘정착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회가 갈수록 썰은 부풀려지고 버전이 조작되어 가고 있었다. 입도(入島) 조부가 영광 앞바다에 뛰어내려 조난 어부들을 구했다거나 재원도에서 장정 열 명을 잠재우고 왕초가 되자 기백 마지기 농토가 생겼다거나 하는 따위는 여러 정황을 볼 적에 조부님이 슬그머니 끼워 넣은 구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듣기만 하고 묻지는 않았다.

 

  조막만한 손자에게 ‘한양선비’ 이야기나 해상 무용담을 반복해서 들려준 속셈은 당신 가문이 ‘서울’에서 내려온 뼈대 있는 집안임을 숙지시키기 위함이고 당신 스스로 고무받기 위함이었다. 허나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어른이 되어 제족의 가세를 보아함즉 ‘뼈대 있는 가문’이기는커녕 별볼일 없는 집안이었고 이미 입증됐다. 후손들을 위해(어쩌면 자신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조부님 앞에다 손주와 겸상으로 고기 밥상을 차려 올리던 조모님의 지극 정성이 지금 생각하면 간절했을 뿐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나 조부님의 기대에 현저히 부응하지 못하지만 후손을 위한 반복적인 주입식 교육과 극한 애정이 그 어른 가신지 반백년이 넘는 작금의 나에게 ‘조부님의 손자 사랑’이라는 귀한 가치로 남아서 나 또한 할배가 되면 손자에게 그리 ‘일장 훈시’ 하리라고 결심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그 손자 역시 이런 캐캐묵은 훈시를 지겨워 할 것이고 장성해서는 그것마저 과장됐다는 것을 눈치채겠지만, 세상사는 그리 돌고 도는 것 아닌가. 돌아 내려오면서 인간은 학습을 하고 그들만의 문화와 버릇을 만들어 유산으로 남기면 후세 사람들은 이번에는 좀 다른 세상을 만들고 진화한다. 이것이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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